가시마 앤틀러스
1. 개요
가시마 앤틀러스(일본어: 鹿島アントラーズ, Kashima Antlers)는 J리그에 소속된 일본의 프로축구단이다. 사슴섬이라는 뜻의 연고지 가시마에 있는 가시마신궁(신사)에서 사슴을 뜻하는 팀명을 따왔다. J리그 출범 초기 여러차례 우승하며 많은 인기를 얻다가 한동안 침체기에 있었지만 2007, 2008, 2009시즌에 연달아 우승을 차지하며 다시 예전의 강호로써의 면모를 되찾았다. 현재까지 모두 8번의 리그 우승컵을 들어올린 리그 최다 우승 팀이다.
이렇게 J리그에서 강한 면모를 보여 왔지만 유독 AFC 챔피언스 리그와는 연이 없었다. 특히 21세기 들어 같은 J리그팀인 우라와 레즈와 감바 오사카가 각각 2회, 1회 ACL 우승을 하는 걸 보았기에 J리그 최다 우승팀 가시마로서는 아쉬울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드디어 2018년 ACL 우승을 따내면서 J리그 최다 우승팀의 자존심을 세울 수 있게 되었다.
2019년 기준, J리그가 승강제를 도입한 이래 단 한 번도 하부 리그 강등을 경험하지 않은 최후의 두 팀 중 한 팀이다. 다른 한 팀은 마찬가지로 J리그 전통의 강호 요코하마 F. 마리노스.
2. 역사
1947년 스미토모금속 오사카 공장에서 축구부를 창단했고, 1975년에 JSL 1부리그 진출을 노리고 이바라키현 가시마시로 연고지를 옮겼다. 1985년에 JSL 승격을 이루어냈으며, 1991년에 이바라키현 43개 기업이 합자한 독립법인 가시마 앤틀러스로 팀명을 변경하고 J리그 원년멤버로 참여했다.
JSL 시절만 해도 선수들이 회사원 신분이고 외국인 선수를 고용하지 않은 탓에 1부리그와 2부리그를 오가는 약팀이었다.
2.1. 제1 전성기
J리그 창설 후 1992년 브라질 국가대표팀 출신의 미드필더 지쿠를 영입하면서 팀의 전력이 비약적으로 상승, J리그 참가 첫 해인 1993년에 J리그 챔피언 결정전 준우승을 차지했다.[4] 그 이후 팀은 궤도에 들어서면서 1996년 J리그 우승, 1997년 2관왕(J리그컵, 천황배), 1998년 J리그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차지했고, 2000년에는 J리그 최초로 3관왕 (J리그 챔피언 결정전, J리그컵, 천황배)을 달성했다.[5] 주빌로 이와타와 함께 1996년부터 2003년까지 리그를 양분하였다.
하지만 클럽 국제대회에서는 기대를 밑돌았다. 1997-98 시즌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 2라운드에서는 울산 현대를 원정에서 5-1로[6] 이겼으나, 8강 라운드(동아시아 4강)에서 포항과 다롄 완다에 뒤져 4강 진출에 실패했다.
하지만 K리그 팀을 상대로 쉽게 이겼다고 여겼는지 2년 뒤인 1999년 아시안 컵 위너스컵[7] 4강전에서 만난 전남 드래곤즈를 얕보다가 이번에는 가시마 안방에서 전남에게 4-1로 대패당하며 탈락한다. 경기가 끝나자 응원하던 가시마 팬들이 분노하여 물병을 가시마 선수들에게 내던졌는데 당시 가시마가 3골차로 크게 져본 게 2년 넘게 없었기 때문이었다. 감독은 2년전 5-1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 대승만 생각한 게 화근이라고 완패를 인정할 정도였다.(우승은 알 이티하드가 전남을 3-2로 이기고 우승한다) 그리고 3, 4위전에서 이라크 알 탈라바를 1-0으로 이기며 3위로 만족해야 했다.
2.2. 침체기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이후 전반적인 침체기에 빠지게 되며, 4-5-6-3-6으로 들쑥 날쑥한 성적을 보이면서 강팀으로써에 체면을 구기게 되고 J리그 최고 인기팀의 지위도 우라와 레드 다이아몬즈에 넘겨주게 된다. 2003년에 자국에서 열린 1회 A3 챔피언스컵에서 우승한게 위안거리.
2.3. 제2 전성기
2006년부터 경기장 관리를 이바라키현에서 팀이 넘겨받고 여러 개혁적인 조치를 취한다.
신임 감독으로 오스왈드 올리베이라를 영입하고 수비수 우치다 아쓰토가 합류하면서 우치다를 중심으로 한 단단한 수비 모토야마-노자와-오가사와라-아오키를 중심으로 한 미드필더진을 앞세워 2007년 J리그 우승, 천황배 우승 2008 J리그 우승 2009년 J리그 우승을 차지해 J리그 3연속 우승하여 J리그 최초로 3연패를 달성하였다. 이때 가시마 엔틀러스는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무적군단이였다.
2.4. 다시 찾아온 침체기
2010 시즌엔 4위에 머무르며 연속 우승 행진을 이어가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3위까지 주어지는 정규리그에서의 AFC 챔피언스 리그 진출 티켓도 획득하는 데 실패하였으나 천황배 결승전에서 시미즈 에스펄스를 꺾고 우승을 차지하며 마지막으로 ACL 진출 티켓을 획득하였다.
2011 시즌엔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해 홈구장이 크게 파손되는 악재가 생기는 바람에 부진을 면치 못하다가 4경기를 남겨놓고 1위 가시와 레이솔에게 승점 17점 차이로 밀려 우승이 좌절되었을 뿐만 아니라 3위 나고야 그램퍼스에게도 승점 14점 차이로 밀려 있어서 천황배 우승을 노리는 수밖에 없었다. 2경기를 남겨두고서는 3위 이내의 팀이 천황배 우승하면 챔스티켓을 승계받을 수 있는 자리인 4위도 날아가고, 12월 17일에는 천황배마저 J2의 교토 상가한테 0:1로 깨졌다. 그래서 2012 챔스 진출은 안드로메다로... 2008년부터 2011년까지 4년 연속 챔스에 진출했던 가시마 앤틀러스는 2012년엔 챔스 진출을 못 하면서 그 기록을 5년으로 늘리지 못하고 4년 연속에서 마감하고 말았다.
2012 시즌은 가시마 앤틀러스에게는 최악의 시즌이었다. 과거 강팀이 맞나 싶을정도로 시즌 초반에는 아예 강등권까지 내려가 있는 등 리그에서 졸전을 기록해 결국은 팀창단 최하위인 11위를 기록했다. 그나마 위안인게 세레소 오사카를 상대로 3:2 역전승으로 리그통산 200승을 달성하고 컵대회를 2연속 우승했다는게 위안이지만 당장 다음시즌을 걱정해야 할정도로 전력이 많이 떨어졌다. 팬들은 이대로라면 다음시즌은 감바 오사카 꼴이 날 것 같다고 걱정하고 있다.
2013 시즌은 지난 시즌의 부진을 털어내고 선전하며 1경기를 남겨두고 3위를 기록하며 3년만의 ACL 진출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졌으나 마지막 경기에서 산프체레 히로시마한테 0:2로 졌고 요코하마 F. 마리노스를 1:0으로 이긴 가와사키 프론탈레가 그 사이를 치고 올라가면서 3위까지 주어지는 ACL 직행 티켓을 얻는 데 실패하였고 설상가상으로 세레소 오사카가 우라와 레드 다이아몬즈를 5:2로 이기며 골득실차로 가시마를 5위로 밀어냈다. 또한, 천황배마저 16강에서 산프레체 히로시마한테 1:3으로 패하여 탙락했기 때문에 3년 연속으로 ACL 진출이 좌절되었다.
2011년부터의 유니폼 스폰서는 LIXIL이라는 건축자재 납품 전문 회사다.
2.5. 2014 시즌
2014시즌에는 감바 오사카, 우라와 레드 다이아몬즈와 우승 경쟁을 했으나 아쉽게 3위에 그쳤다. 그러나 2011년 이후 3년만에 AFC 챔피언스 리그 진출권을 획득했다.
2.6. 2016 시즌
전기리그를 1위로 마치며 부활하나 싶었지만 후기리그를 무려 11위로 마치게 된다.
이러한 성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연간기록은 3위를 차지한다.
챔피언십에서는 통합1위, 통합2위, 통합3위, 전기리그우승팀, 후기리그 우승팀 총 5팀이 참가하는게 원칙이다.
그러나 우라와 레드 다이아몬즈가 통합 1위, 후기리그 챔피언을 차지했기 때문에 통합 2위를 차지한 가와사키 프론탈레와 더불어 세 팀만 포스트 시즌에 참여하게 된다.
가시마는 단판전인 준결승전에서 가와사키에 0-1로 승리하고 결승에 진출한다.
홈에서 치뤄진 결승 1차전에서 우라와에 0-1로 패하지만 2차전 원정에서 1-2로 승리하며 원정 다득점 원칙에 의해 8번째 리그 우승을 차지하게 된다.
참고로 챔피언십은 2016시즌 중반 영국의 동영상 중계 사이트 DAZN에게 J리그의 중계권이 팔리게 되면서 룰이 어렵다는 이유로 2시즌만에 폐지된다. 2017시즌부터는 단일리그에 포스트시즌을 하지 않는 것으로 복구.
2016 FIFA 클럽 월드컵에서 개최국 리그 우승팀으로 출전하여 아시아 클럽 첫 결승 진출을 이룩했다. 결승에서 맞붙은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로 2-1로 앞서기도 했지만 호날두에게 해트트릭을 허용하며 연장 끝에 2-4로 패하며 준우승으로 만족해야 했다.
2.7. 2017 시즌
초반에 조금 부진했지만, 마지막 라운드까지 1위를 고수했다.
막판에 가와사키 프론탈레에게 점점 따라잡히더니 결국 마지막 라운드 주빌로 이와타전에서 0-0으로 무승부를 거두면서 같은 시간 오미야 아르디자에게 대승을 거둔 가와사키와 승점 동률을 이루게 된다. 가와사키는 득실차를 +39, 가시마는 +22를 기록하면서 결국 마지막날 가와사키에게 우승을 내주게 된다. 가와사키는 창단 첫 우승.
이 날 우승팀 가와사키도 씁쓸한 일이 있었는데 가시마의 우승이 워낙 유력했던 상황이라 J1리그 트로피는 가시마에 가 있었고, 덕분에 가와사키는 첫 우승을 우승컵대신 우승컵이 그려진 판넬로 세레머리를 하게 되었다.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조별리그에서 울산 현대, 무앙통 유나이티드, 브리즈번 로어와 한 조에 속했다.
울산에게 홈에서 2-0 승리 원정에서 0-4라는 스코어로 완승을 하지만, 무앙통, 브리즈번에겐 각각 1번씩 진다. 그래도 조 1위로 16강 진출.
16강에서 광저우 헝다를 만나 원정에서 1-0으로 패배한다. 홈에서 2-1 승리로 만회했지만 원정 다득점 원칙에 따라서 16강을 넘지 못했다. 역시나 챔스에선 약팀행.
2.8. 2018 시즌
샬케 04, 1. FC 우니온 베를린 등 독일 무대에서 활약하던 일본의 꽃미남 스타 우치다 아쓰토가 2018시즌을 앞두고 복귀했다.
J리그 9라운드 가와사키 프론탈레와의 경기에서 4골이나 실점하며 패배하는 수모를 당했고, 리그 12위에 위치하게 되는 기록중이다.
2018년 7월 23일,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 중앙 수비수인 정승현을 사간 도스로 부터 팀 내 공격수였던 카나자키 무를 1대1 트레이드 조건 형식으로 영입 하였으며, 팀 내 최고 수준의 연봉 계약을 체결하였다. 기사 참고
2018년 9월 27일을 기준으로 리그 순위 4위, 천황배 5라운드 진출을 기록하였고, 아시아 챔피언스리그에서도 8강에서 합산 결과 5대0으로 톈진 취안젠을 꺾으며 4강에 진출하였으며, 4강전은 수원 삼성과 대결을 펼친다.
9월 29일 28라운드 경기인 비셀 고베와의 원정 경기에서 5대0 대승을 거뒀다.
10월 3일 AFC 챔피언스 리그 4강 1차전 수원 삼성과의 홈 경기에서 후반 추가시간에 우치다 아쓰토의 극적인 역전골로 3대2 승리를 거뒀다.
2018년 10월 8일, 29라운드 경기 후를 기준으로 FC 도쿄와 같은 승점인 46점을 기록하고 있지만, 리그 내 득점에서 6골이나 앞서 AFC 챔피언스 리그 진출권인 리그 3위에 랭크하고 있다.
마지막 라운드에서 사간 도스와 0-0으로 비기면서 3위로 챔피언스리그 예선 진출권을 획득했다.
천황배에서는 4강에서 탈락했지만 클럽 월드컵에서 북중미 챔피언 치바스 과달라하라를 꺾으며 레알 마드리드를 만나게 되었다. 그러나 레알 마드리드에게 3대1로 완패를 당하면서 결승진출이 좌절되었고 3,4위전에서 만난 리버플레이트에겐 4대0으로 대패를 당하며 4위로 마치게 된다.
'''2018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드디어 첫 우승을 차지했다.'''
조별리그에서 수원 삼성 블루윙즈를 상대로 1:2로 승리하였다. 조별리그 5라운드 진행중에 J리그 팀중 유일하게 16강 진출을 확정. 그러나 같은조 나머지 세 팀의 경기력또한 심각해서 진출당했다고 보는게 맞을듯. 그런데 16강에서 우승후보였던 상하이 상강을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1차전 홈에서 3대1로 대승을 거둔다. 2차전 상하이 원정에서 헐크가 2골을 넣어 어려운 경기를 치뤘지만 권순태의 미친 선방으로 2대1로 패하며 득실차로 10년만의 8강 진출에 성공한다.
8강전에서는 중국리그의 텐진 취안젠을 만났다. 악셀 비첼이 이적하고 모데스테가 태업을 선언한 혼란스러운 분위기라 경기내내 압도하며 홈에서 2대0승리를 거두고 4강진출을 바라보고 있다. 결국 2차전 원정에서도 3-0 대승을 거두며 4강에 진출, 4강에서는 조별리그 상대였던 수원 삼성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1차전 홈에서 3-2 역전승, 2차전 수원 원정에서 3-3 무승부를 거두어 종합 스코어 6-5로 '''클럽 역사상 최초로 AFC 챔피언스 리그 결승 진출을 달성했다.'''
그리고 이란의 페르세폴리스 FC에게 홈에서 2대0승리 원정에서 0대0 무승부를 기록하면서 드디어 챔피언스리그 첫 우승을 이뤄냈다.
2.9. 2019 시즌
2019시즌도 전 시즌과 비슷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우승 경쟁권은 아니지만, 7월까지 4위를 기록하면서 괜찮은 성적을 기록중이다.
챔피언스 리그에서도 8강에 진출하면서 순항하고 있지만, 여름 이적시장에서 2018시즌 챔스 MVP 스즈키 유마는 벨기에, 주전 수비수 안자이 코키가 포르투갈로 이적을 확정지었고, 젊은 공격수 아베 히로키가 바르셀로나행이 결정되면서 순식간에 주전급 멤버 3명이 이탈했다.
26라운드에서 1위 FC 도쿄에게 2대0으로 승리하면서 승점차를 1점차까지 따라잡으면서 리그 우승 가능성도 큰 상황이다.
그리고 10월 6일 세레소 오사카에 승리하고 같은 라운드에서 FC 도쿄가 지면서 선두에 올랐다.
29라운드에서 약체 마쓰모토와 비겼는데 도쿄가 고베에 대승을 거두면서 승점차가 동률이 되었고 골득실에서 앞서며 불안한 선두를 유지중이다. 결국 1경기 남겨놓고 3위까지 미끄러져 리그 우승을 통한 아챔 본선 진출은 불가능한 상황.
자국컵 대회에서는 르방컵은 4강까지 올랐지만 가와사키에 밀려서 탈락했고 천황배는 4강을 앞두고 있다.
챔피언스 리그는 8강에서 탈락했다.
2019년에도 리그 3위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으며, 뉴캐슬 제츠를 4:1로 이기고 본선에 합류했다. 본선에서 만날 팀은 E조의 경남 FC와, 조호르 다룰 탁짐, 산둥 루넝 타이산과 한 조를 이뤘다.
처음엔 디펜딩 챔피언답게 쉽게 올라가는듯 했지만, 말레이시아 원정에서 패하는 등 수모를 겪으면서 어렵게 16강에 진출했다.
16강에서 산프레체 히로시마를 만나 종합 3-3을 기록했지만, 원정골 우선으로 8강 진출에 성공했다.
8강에서 광저우 에버그란데를 만나 종합 1-1을 기록했지만, 원정골 우선으로 4강 진출에 실패했다. -
리그 최종전에서 4위 가와사키가콘사도레 삿포로를 꺾었으나, 나고야 그램퍼스를 잡고 ACL 진출을 확정지었다. 천황배 JFA 전일본 축구 선수권대회에 결과에따라 바로 본선으로 갈지 플레이오프에서 시작할지 결정된다.
컵대회를 마지막으로 오오이와 감독이 사임할 것을 밝혔다.
천황배 JFA 전일본 축구 선수권대회 우승을 놓쳐서 ACL은 플레이오프에서부터 치루게 된다.
2.10. 2020 시즌
현재 1승 1무 5패로 시미즈 에스펄스와 함께 공동 17위를 기록하고 있다.
18승 5무 11패로 5위에 오르며 시즌을 마감했다.
3. AFC 챔피언스 리그
우라와 레드 다이아 몬즈, 감바 오사카가 우승컵을 들어올렸지만 유독 가시마 엔틀러스는 성적이 영 좋지 않은게 2009, 2010, 2011 출전한 대회에서는 모두 16강 광탈했다.
AFC 챔피언스 리그와의 악연은 2002년 부터 시작되는데, 춘추제로 개편되기 이전 2002/03대회에서는 대전 시티즌, 상하이 선화, BEC 테로 사사나에 편성되었지만 1무2패라는 초라한 성적으로 탈락했다. 그것도 K리그의 승점자판기로 유명한 대전[8] 에게 패배한걸로 시작해 K리그와 악연이 시작되었다. 챔피언스리그 개편 전의 마지막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 시즌에서도 동아시아 4강 라운드에서 수원과 안양에게 치여서 최하위로 마감했으니 2002년은 그야말로 악연의 시작인 셈이다.
2008년 대회에서는 K리그 팀을 피하고 베이징 궈안, 남딘, 끄룽 타이 은행에 편성되 5승 1패로 조별리그 깡패 다운 면모를 보이며 8강에 진출했으나, 호주의 애들레이드 유나이티드에게 2:1로 패배로 광탈하고 말았다.
2008년 J리그 우승팀으로 대회에 참가해 조별리그에서 만난 상대는 수원 삼성 블루윙즈였는데 원정에서 4:1로 대패했지만, 홈에서 3:0으로 승리해 4승 1무 1패 4승2패 수원[9] 을 여유롭게 따돌리며 조1위로 16강에 진출했다.
16강에서 FC 서울을 홈으로 불러들여서 경기했다.[10] 전반 4분 가시마 후방서 길게 연결된 롱패스를 김진규가 걷어낸다는것이 수비 맞고 굴절되며 반대 방향으로 돌아갔다. 이를 가시마 공격수 고로키 신조가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골키퍼와 일대일 찬스서 침착한 오른발 슈팅으로 득점을 기록하며 1-0으로 앞섰지만, 전반 21분 이승렬이 1:1 동점을 만들어 냈다. 후반 6분 서울 진영 왼쪽에서 얻은 코너킥 기회서 문전으로 올라온 볼을 아오키 다카시가 머리로 가볍게 받아 넣으며 2-1로 달아났다.
기세가 오른 가시마는 서울을 강력하게 몰아쳤다. 특히 서울의 측면 풀백인 케빈과 아디가 후반 초반 차례로 옐로카드를 받으며 분위기가 완전히 살아났다.
서울은 후반 12분 김치곤 대신 고명진을 투입해 분위기 반전을 노렸다. 그리고 서울은 가시마의 오가사와라 미쓰오가 팔꿈치로 가격해 퇴장을 당한 후, 후반 22분에 이상협을 그라운드로 넣으며 승리에 대한 강한 의지를 나타냈다.
2:1로 앞서며 무난히 8강진출에 성공하나 싶었는데.. 후반 32분 기성용의 그림같은 프리킥 골로 인해 2:2동점이 되고 결국 승부차기까지 갔다. 골키퍼 김호준이 1,2번째 키커 상대로 선방했으나 서울 키커들도 실축해서 7번째 키커 까지 나서는 혈투까지 펼쳐 졌지만 우치다[11] 가 3점 홈런을 날려 4:5 패배로 탈락하고 만다.
2010 대회에서는 2009년 우승팀 자격으로 전북 현대 모터스와 대결하게 되었는데, 작년과 달리 홈, 원정 둘다 2:1로 승리하고 나머지 창춘, 페르시푸라 자야푸라를 꺾고 6전 전승으로 16강에 진출한다.[12] 16강에 만난 상대는 2009시즌 종료 이후 감독 하나 잘못 바꿨다고 콩가루 집안이 되어버린 팀으로 확정 되었다.
전년도 우승팀에다가 국내 컵대회 우승으로 명문팀이였고 동생인 레모스 올리베이라가 있어 형제 대결을 기대했고[13] 유니폼도 비슷해 검빨 더비를 기대했지만 이런 저런 사정[14] 으로 완전 팀 재창단 수준에서 경기 3일전 레모스 올리베이라를 경질시키고 수석코치 체제로 전환할 뿐더러 홈경기 이점도 가져 가시마 팬들은 승리를 확신했다.
하지만, 전반 28분 모따가 페널티 지역 오른쪽에서 알미르의 침투 패스를 받아 가시마 수비 두 명 사이를 파고드는 동시에 오른발 슛을 날려 골로 연결해 1:0으로 포항이 앞서가게 되었고 경기 종료때까지 선제골을 지킨 포항은 8강에 진출했고 가시마는 또다시 16강앞에 통한의 눈물(?)을 흘려야 했다.
2011년 J리그에서는 순위가 밀려 출전이 좌절되는가 싶더니 천황배 우승으로 다시 대회에 출전에 2009, 2010, 2011 3연속 대회에 출전해 H조에 배정받아 수원 삼성 블루윙즈, 시드니 FC, 상하이 선화랑 맞붙게 되었다.
2011년 대회에는 작년과 같이 6전 전승 괴물포스를 보여주지 못했는데 첫경기 상하이 선화와 졸전끝에 0:0으로 비기고 제작년 대면한 수원과 다시 조별리그에서 만나 제작년 처럼 치고박지 못하고 홈, 원정 둘다 염기훈이 1골씩 넣어 1:1로 비기고 나머지 시드니, 홈에서 상하이 선화를 이겨 3승 3무로 겨우 체면치레한채 조2위로 16강에 진출수원도 같은 3승3무 였으나 골득실로 조1위를 확정 지었다.[15]
역시 2년전과 마찬가지로 경우에 수에 걸리게 되었는데 가시마가 있는 H조는 깔끔히 정리된 반면 16강 상대를 배정 받는 F조는 진흙탕 싸움이 진행중이었다.
F조는 FC 서울, 항저우 그린타운, 나고야 그램퍼스, 어른의 사정으로 플레이오프 끝에 동아시아에 배정받은 알 아인이 있었는데 조1위를 놓고 FC 서울, 나고야 그램퍼스가 진흙탕 싸움을 펼치고 있었다. 나고야는 초반에 항저우에게 2:0으로 삐꺽거렸으나 나중에 홈에서 1:0으로 복수하고 서울을 홈에서 1:1 원정에서 2:0으로 이기고 알 아인과 홈에서 4:0으로 크게 이겨 마지막 알아인 원정만 이기면 조1위를 확정지을수 있었다. 반면 서울은 마지막 경기에서 항저우 원정에서 1:1로 비기면서 3승 2무 1패로 조별리그 경기를 마쳤다.
나고야가 알아인을 이기면 수원 vs 서울 슈퍼매치가 확정되고 가시마 vs 나고야 K리그 J리그 팀킬전이 된다. 국내에서는 벌써부터 슈퍼매치 준비하자는 분위기로 서로 싸우고 헐뜯는 분위기였고 일본에서도 잠깐 소규모 병림픽이 진행되었다.
하지만 제작년과 같이 기적이 일어 났으니.. 알 아인은 홈에서 나고야를 3:1로 침몰 시키며 나고야는 조2위로 내려 앉았고 국내에서는 제작년 스리위자야 에게 스리셀로나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고 알아인에게도 별명을 붙여 주었다. 하여튼 예상과 달리 슈퍼매치는 피해갔고 동아시아 16강 대진은 수원 삼성vs나고야 FC 서울 vs 가시마, 전북 현대 vs 톈진 톄다 감바 vs 세레소로 확정되었다.
가시마 상대였던 서울은 2년전 탈락위기로 빌빌대는 서울이 아니였다. 작년 K리그 우승 컵대회 우승으로 승승 장구하는 서울이고 조별리그를 부진을 청산하고 재도약을 준비하고 있었다.
재작년, 작년과 달리 원정부담으로 안고 서울 원정을 떠났고 경기는 서울 압승으로 끝났다. 우치다가 없는 가시마는 서울 상대로 상당히 고전했고 서울은 시종일관 가시마 골문을 물어 뜯었다.
전반 36분 방승환, 후반 9분 데얀골로 2:0으로 몰리던 도중 후반 36분 이와마사의 슈팅이 골로 연결됐지만 오프사이드 판정을 받고 무효 처리되었다. 종료직전 고명진골로 3:0 완패를 당했다.
3년 연속 조별리그에서는 K리그 팀에게 강했지만 16강전에서는 K리그 팀에게 패배하는 바람에 애매모호한 관계가 되었지만 3번의 16강중 2번 만난 FC 서울은 선수 한명 한명이 인간말종으로 보일만큼 악연을 이어가고 있다.
그리고 2015년에서도 또 서울을 만나 서울에만 2연패를 기록한다(...)
리그에서는 막강한 기세를 보임에도 정작 AFC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3년 연속으로 16강에서 K리그팀에게 무릎을 꿇어서 일본 축구팬들에게 일본의 인테르라고 까인다. 2000년대 후반 칼치오폴리 사건 이후로 인테르가 자국리그 깡패 역할을 했던 적이 있기 때문이다.
AFC 챔피언스 리그 전신인 아시안 클럽컵에서 성적도 좋지 않았다. 위에 언급대로 주빌로 이와타와 함께 J리그를 양분하던 클럽이라 자주 출전 했지만 주빌로가 거둔 뛰어난 성적에 비해(우승 1번, 준우승 2번) 가시마 성적은 시망. 때문에 그 때부터 안방 호랑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리고 2018 시즌엔 드디어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차지하면서 명실상부 일본내 최고 명문 클럽으로 등극했다.
2020 ACL 플레이오프 경기에서 홈인 가시마 스타디움에서 멜버른 빅토리[16] 에게 발목을 잡혀 ACL 진출에 실패했다. 비가 많이 와서 문자 그대로의 진흙탕 싸움 끝에 멜버른이 극적으로 1골을 넣었다.
4. 선수단
5. 유니폼
2002년부터 나이키의 유니폼을 입고 있다.
메인 컬러는 딥 레드이고 전면 스폰서인 LIXIL은 일본 유명 건축자재, 주택 설비 기기회사로, 일본여행을 가봤다면 변기에서 한번쯤은 이 회사의 로고를 봤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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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시즌 나이키 홈 유니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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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시즌 나이키 홈 유니폼.
6. 기타
J리그 출범 초기부터 꾸준히 리그를 주름잡던 명문인 데다 연고지가 이바라키현에서도 남동쪽 끝에 위치한 구석진 곳에 있는 점까지 겹쳐 지금까지도 팬베이스가 연고지 못지 않게 도쿄 인근에 몰려 있는 특징을 갖는다. 심지어 가시마는 리그 출범 초기 다른 간토 지역 클럽들이 반쯤 도쿄 국립경기장에 엉덩이를 걸친 것과 달리 거의 모든 홈경기를 가시마에서 소화했는데도[17] 도쿄 지역 팬이 많다. 2015년 가시마 앤틀러스 자체 조사에 의하면 팬클럽 회원 출신지는 연고지역인 이바라키현이 41%, 지바현이 12%인 데 비해 도쿄가 18%, 가나가와현이 8%에 달했다.
1999년 도카이 촌 방사능 누출사고로 인해 홈경기를 다른데서 치룬적이 있었다. 가시마 팬들앞에 도카이 촌 이야기하면 장소가 일본내, 심지어 해외라도 이지메를 얻어맞는 수준에서 끝나는게 아니라 목숨이 위험하다는 이야기가 있다.
12년이 지난 2011년 도호쿠 대지진으로 경기장 일부가 파손 되었고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로 인해 방사능 누출이 심해지자 3개월간 홈경기를 진행하지 못했다. J리그 자체가 4월 23일까지 중단되었고, 이후에도 가시마의 홈경기는 2경기가 각각 7, 8월로 연기되었다. 6월 15일 반포레 고후와의 홈경기를 통해 가시마 스타디움의 홈경기가 재개되었고, 이후 시즌후에 보수가 완료되었다.
위에 챔피언스 리그 관련 문단에서도 언급되었듯이 리그 우승 숫자는 압도적으로 많지만 아시아 무대에서 하도 부진해서 비아냥을 많이 들었지만 2018년에 AFC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차지하면서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일본내 최고 명문구단이 되었다.
7. 한국인 선수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 출신 선수들과 인연이 깊은 팀이다.
과거에는 이정수, 박주호, 황석호, 정승현 등 유명 수비수 선수들이 거쳐갔으며, 2020년 기준으로 골키퍼 권순태가 팀에 속해 있다.
[1] 기존의 모기업인 일본제철(옛 스미토모금속 → 신닛테쓰스미킨)에서 2019년 8월에 과반 지분을 인수하였다. 일본제철과 이외 이바라키현 내 지방자치단체와 기업은 소수 주주로 남는다.[2] J리그 출범 당시 유일하게 시가 아닌 정 단위에 연고지를 차린 클럽으로, 이 때문에 J리그 당국으로부터 유일하게 복수 지자체 연고를 인정받았다. 현재는 초기 연고지 3개시에 2개를 더해 연고 구역을 설정하고 있다.[3] 모기업인 전자상거래 기업 메르카리의 회장.[4] 이 때를 기리는 의미로 지금도 서포터들이 지쿠의 초상화와 함께 '지쿠의 정신(혹은 영혼){Spirit of Zico}'라 쓰여진 대형 깃발을 내걸기도 한다.[5] 그 후 2014년에 감바 오사카가 2번째로 3관왕을 달성했다.[6] 다만 이 점수차는 다소 억울한 측면이 있다. 이날 울산이 대패한 것은 2-1로 뒤지던 중 선발 골키퍼 서동명이 퇴장당하면서 수적 열세에 몰렸기 때문인데, 하필이면 원래 주전인 김병지가 월드컵 본선 진출 기념 행사로 청와대에 초청을 받는 바람에 대신할 골키퍼가 없었다. 그것도 애초에 팀 명단에 2명뿐인 골키퍼가 모두 청와대로 불려갈 판이었던 것을, 청와대에 읍소해서 간신히 서동명이나마 선발로 낼 수 있었던 것이다. 대신 수비수 박정배가 골키퍼를 대리했으나 평이한 슛을 내주는 등 대패의 원인이 되고 말았다.당시 기사 덧붙여서 김병지가 출장한 2차전에서는 가시마와 1-1로 비겼다.[7] 1991년부터 2002년까지 열렸던 대회로 2002/03 대회부터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과 함께 AFC 챔피언스 리그에 통합되었다. FA컵이나 리그컵 우승팀끼리 맞붙던 UEFA 유로파 리그같은 대회였다. 이 대회에서 K리그 팀들은 준우승만 3번 하고 한번도 우승하지 못했다.[8] 2003년 반짝 선전을 기억하는 팬들이 많겠으나 2002년에는 압도적인 최하위를 기록했다.(2002년 리그 27경기에서 고작 1승을 거둘 정도 였다.) 당시의 대전 시티즌은 FA컵 우승팀 자격으로 AFC 챔피언스 리그에 진출했다.[9] 당시 수원은 상하이 선화 원정에서 2:1로 졌을 뿐더러 싱가포르팀 상대로도 많은 골을 뽑아 내지 못해서 4승2패 골득실+4로 조별리그를 마무리 지었다.[10] 조별리그에서 탈락 위기를 겪은적이 있는데 서울은 감바 오사카, 산둥 루넝에게 패배하고 인도네시아 팀 상대로 압승하지 못하고 3승 1무 2패로 조별리그를 마친 상태였다. 산둥루넝 마지막 상대는 스리위자야였고 승리하면 전적은 같으나 승자승, 골득실로 진출하게 되므로 모두들 서울의 탈락을 예상했으나, 4:2 패배라는 놀라운 스리위자야 팔렘방의 기적이 나타나며, 어부지리로 FC 서울이 올라갔다. 그래서 일본의 네티즌들은 "탈락위기에서 올라온 팀에게 패배는 상상조차 하지 않는다."라면서 서울을 무시했다.[11] 샬케 04 등 독일에서 뛰다가 2018시즌 복귀[12] 이 대회에도 작년과 똑같이 K리그 팀에게도 기적이 생겼는데, G조에서 수원 삼성은 4승 1무 1패로 조별예선을 마감했고 3승2무 감바 오사카는 허난 전예를 상대로 마지막 경기를 준비중이였다. 여기서 감바가 이기면 수원은 조2위로 16강에서 E조 1위 성남 일화를 만나 그 유명한 마계대전을 펼쳐야 했고 감바가 비기거나 지면 수원은 조1위가 확정되었다. 하지만 허난전예는 그 유명한 소림축구다운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2무3패로 G조 최하위로 탈락이 확정된 상태 였다. 역시 모두들 감바의 무난한 승리를 예상했고 기대에 부응하는듯 경기는 2:1로 감바가 앞서고 있었고 경기를 지켜보는 수원팬들은 벌써부터 성남전을 준비하자는 분위기 였지만.. 경기종료 직전 허난 전예 송태림이 동점 헤딩골을 성공시키며 감바는 조2위로 내려 앉았다. 송태림은 차범근 축구교실 출신으로 K리그 문을 두들겼지만 여의치 않아 중국 허난전예로 가서 활동했고 중요한 순간에 골을 터트려 16강에서 K리그 팀이 4전 전승으로 올라가는데 큰공을 세웠다. [13] 가시마 감독인 오스왈도 올리베이라가 포항 감독 레모스 올리베이라의 형이다.[14] 2010년 대회가 끝나고 세르지오 파리아스는 클럽 월드컵 이후 안 떠난다고 해놓고선 계약을 파기하고 중동으로 도주했지 않나, 고슬기가 울산으로 이적했고 최효진이 서울로 이적하고 같은 날 미드필더 김명중이 전남으로 이적. 베이징 연습경기에서 1:0으로 패배할뿐더러 더 충격인건 데닐손과 스테보가 나란히 분요드코르로 이적해버린다.[15] 도호쿠 대지진 여파로 일어난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로 방사능 문제가 제기되자 일부 홈경기를 도쿄 국립경기장에서 했다.[16] 심지어 혼다 케이스케가 나간 이후 보강에 실패하여 리그 8위였다.[17] 1993~1998 시즌 사이 국립경기장 경기 수는 5경기이다. 이는 베르디 가와사키의 28경기는 물론 우라와 16경기, 요코하마 마리노스 14경기 등에 비해 현격히 적은 것. 다만 홈 경기장이 확장공사중이던 1999~2001 시즌 사이에는 14경기를 국립에서 소화했다.